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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늦은 반성문

天下有兩大衡(천하유양대형), 두 개의 저울, 다산 정약용 선생의 편지

by 관찰인간 2021.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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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天下有兩大衡(천하유양대형), 두 개의 저울

 

天下有兩大衡 一是非之衡 一利害之衡也 於 此兩大衡 生出四大級 凡守是而獲利者太上 也其次守是而取害也其次趨非而獲利也 最 下者趨非而取害也 (천하유양대형 일시비지형 일이해지형야 어차양대형 생출사대급 범수시
이획리자태상야 기차수시이취해야 기차추비
이획리야 최하자추비이취해야)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유배생활 중 1816년 5월 3일 큰 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씀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天下有兩大衡, 천하유양대형), 하나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이라는 저울이며, 다른 하나는 이익과 손해라는 저울이다(一是非之衡, 일 시비지형,  一 利害之衡也, 일이해지형야) 이 두 개의 저울에서 네 가지 등급이 생겨난다(於출兩大衡 生 出四大級, 어출양대형 생 출사대급). 

 

1. 최상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이익도 얻는 것이다. 是而利’(시이리)

2. 다음은 옳은 것을 추구하다가 해를 입는 것이고, ‘是而害’(시이해)

3. 다음은 그른 것을 추구하여 이익을 얻는 것이다. ‘非而利’(비이리)

4. 최하는 그른 것을 추구하다 해를 입는 것이다. 非而害’(비이해)

 



정약용 선생은 유배생활 중에도 아들의 훈육에 남다른 정성을 쏟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위에 인용한 글은 그가 큰 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며 행동의 판단기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앞두고 실행을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 그때에 위와 같은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실행 판단에 대한 도움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판단의 ‘기준은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
(시비(是非)의 저울)’와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이해(利害)의 저울)’이다. 2개의 저울이 각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지느냐의 조합으로 나올 수 있는 4개의 경우는 각 순위를 매겨 그 가치의 무게를 따질 수 있다.

 

첫 번째 등급의 행동은 가장 좋은 것으로서, 옳은 일을 하면서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다. (명예와 실리를 동시에 얻는다.) 옳은 일을 하면서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누구도 망설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옳은 일을 할 때는 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사람들이 어떤 결과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두 번째 등급의 행동 때문이다.(명예와 의를 지키며 실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또는 명예와 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손해라도 감수해야 한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했을 때에는 당연히 긍정적인 결과가 나와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결과가 나에게 해가 된다면 너무나 억울하지 않겠는가. 대부분 사람들이 옳은 일을 망설이는 이유는 그 일로 인해서 자신에게 피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 번째 등급의 행동인,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명예나 의보다는 실리를 중하게 생각한다.) 종종 이런 말을 하기도, 또 듣기도 한다. ‘남들 다 지키지 않는데 나만 지키면 손해다.’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고 그름의 가치보다는 이익과 손해라는 가치를 더욱 높게 평가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옳지 않고, 손해가 날 수 있는 네 번째 등급의 행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명예도 잃고 손해를 당한다.)

 

누구든지 이성적으로는 정약용의 행동 등급에 대하여 논란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의 행동은 첫 번째 등급 이후 세 번째 등급을 차선책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약용은 행동에 앞서 옭고 그름을 분별하는, 시비(是非)의 저울을 우선해 판단하였던 뚜렷한 가치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은 실리에 중점을 두어 이익과 손해를 분별하는, 이해(利害)의 저울을 우선해 판단한다는 셈이다.

 

세 번째 등급의 행동은 당장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꽤 많다. 나는 세 번째 등급의 행동은 네 번째로 향하는 미끄럼틀의 등급이라고 말하겠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라는 점도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 번째 등급은 네 번째 등급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큰일이거나 작은 일이었거나, 각자 직접 경험했던 일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이 주변이나 또는 언론보도를 통해서 하루에도 세 번째 등급을 선택했다가 네 번째 등급으로 추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숱하게 듣고 본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나 자신도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눈앞에 이익이나 쾌락을 좇다가 낭패를 당한 일이 한, 둘이 아님을 시인한다. 몇 개의 대표적인 것을 적어보려 했으나 한두 가지가 아닌 것에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으며, 부끄러움에 떠올리는 것조차 포기하고 싶다. 남들이 모르게 지나간 일도 스스로 떳떳하지 못해 부끄럽고 죄책감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두개의 저울을 늘 생각하여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며 시비의 저울을 더 마음 가까이 두어야 하겠다.

네 번째 등급에 들지 않으려면 세 번째 등급을 경계해야 한다.

 

옳은 일이 아니라면 나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돌아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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