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부터인지 꼰대라는 말이 예전보다 흔하게 들린다.
내가 이제는 꼰대가 되어서 일까? 꼰대가 듣기에는 그 말이 선배에 대한 비하 표현으로 생각되어 아주 불쾌한 마음이다. 우리는 왜 꼰대인가? 젊은 사람들에게 꼰대는 늘 있어 왔다. 오늘처럼 친척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도 꼰대를 볼 수 있었고, 직장에서 말할 것도 없이 있다.
꼰대는 꽤나 나이 많은 사람을 칭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요즘처럼 기술과 문화가 급변하는 시기에는 고만고만한 나이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겨우 몇 살 더 많은 사람을 꼰대로 부르고 있을지 모르겠다.
꼰대에 대한 제2의 표현은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한다. 짧은 한마디에 후배에게 자신의 의견을 관찰하려는 지나친 태도, 현실감 없이 과거에 대한 집착 등이 녹아 있다. 꼰대와 함께 제2의 표현이 합쳐져 꼰대 라테가 일종의 현실에 대한 풍자로서 태어났다.
얼마 전에 모 브랜드 커피숖에 방문하였을 때, 신메뉴로 출시된 ‘꼰대 라테’ 포스터 장식이 붙어 있는 것을 실제로 보았다. 나는 그런 표현이 기발하고, 신기하고 웃기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꼰대라는 표현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하는 대중적인 화두가 되었는지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 포스터를 본 많은 사람들이 ‘꼰대 라테’‘꼰대 라테’가 뭐냐고 많이 들어봤을 것 같다. 아마도 커피숍의 점원은 젊은 사람이 그것이 어떤 라테인지 물었다면, 어떤 재료가 얼마나 들어가는지, 또 어떻게 만드는지, 그 레시피를 설명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묻자 답이 너무 간단했다.
“옛날 다방커피예요””

음.... 그것만으로도 대번에 알아듣고 설명이 충분했던 나는 역시 꼰대인가?
그리 오랜 옛날도 아닌 나의 시절, 나 때는 말이야 커피를 말이야....
요즘처럼 브랜드 커피숖에서 다양한 메뉴로 선택할 것이 없었다. 커피숍이라는 다방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인스턴트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섞어 주는 커피를 팔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장면일 수 있겠다. 그 당시, 다방 테이블에는 해장국집에서 흔하게 보는 양념이나 들깻가루 종지 같은 그릇 2개가 있었다. 한 개는 분유 같은 프림이고 하나는 설탕이었다. 그것들을 열어 스푼으로 취향껏 넣고 마시는 것이 보통의 커피였다. 그냥 아무것도 넣지 않고 인스턴트커피만 녹여 마시는 것을 보고 블랙커피라고 했고, 설탕만 넣는다면 설탕 커피라고 불렀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스위트 블랙이었다.
대부분은 프림과 설탕을 함께 넣어 마시는데 그것이 보통의 커피였고 다방이었다.
당시의 레시피는 보통 2:2:2 였다. 커피 2스푼, 프림 2스푼, 설탕 2스푼이다. 보통 가정에서도 커피는 그런 식으로 마셨기 때문에 TV에서는 다양한 브랜드의 인스턴트커피와 프림 광고가 있었다. 국민배우 안성기씨의 CF 장면이 유명하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그런 광고도 까마득하고 희귀한 레트로 장면처럼 여겨진다.
그 시절 다방에는 커피를 타주는 여성 종사자가 있었는데 영업장 내뿐만 아니라 전화로 주문하는 커피를 배달해 주기도 했다. 종종 커피 외에 다른 것을 팔기도 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물 끓이는 포트와 커피, 프림 분말이 있다고 해도 누군가 시중을 들어주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오면 직장 동료 중 여직원이 그 수발을 드는 부당함이 일상적으로 있었다. 그리고 종종 다방에 전화로 주문하면 영업소의 종사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 배달 와서 커피를 타주는 것 외에 온갖 아양으로 웃음을 팔기도 했다.
꼰대인 내가 옹알이를 하던 시절에도 꼰대라는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의미상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공감하지 않는 후배들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꼰대라고 칭했고, 그 의미는 여전히 다르지 않다. 다만 꼰대가 느끼는 꼰대에 대한 과거와 현시점의 달라진 느낌은 다소 꼰대라는 말이 확장되어 자신의 의사와 맞지 않는 상사, 선배를 총칭, 비하하는 느낌으로 번져 있는 느낌이다.

이글의 쓰는 꼰대가 생각하는 꼰대는 ‘배우지 않는 사람’,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누구든 젊은 시절에는 치열했고 뜨거웠다. 누구 못지않은 열정으로 활활 불태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배움에 대한 열정도 시들해지고, 내가 아는 것, 내가 경험한 것 내에서 세상 모든 일들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꼰대가 되어간다.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으니 시야가 편협하고,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 새로운 것 또는 다른 의견에 대한 수용력이 부족하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고, 과거의 자신의 경험만으로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조직 내에서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과 마찰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 때는 말이야.....”를 끄집어낸다. 나이 먹어서도 배움을 게을리하고 스스로를 늘 새롭게 다지지 않는 사람은 ‘꼰대’로 불리며 조직의 중심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간다.
후배들이 바라보는 꼰대의 모습은 아마도 이런 모습일게다.
일도 잘 못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견과 훈수로 불편함과 민폐를 주는 사람
그러면서 본인의 권위를 스스로 대단한 것처럼 여기며 대우를 요구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독선과 아집의 사람.
누구의 바람도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여된 선배라는 직위와 책무는 정말 어렵다. 선배라고 해서 누구나 후배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다.
신참 시절에는 잘하지 못해도 중간만 하면 별 탈없이 지낼 수 있었는데, 선배는 존경을 받거나 무익의 꼰대, 양자 중 한 가지일 수밖에 없다. 내가 원치 않아도 후배들은 그 기준을 대어 선배들을 평가하고 결국 선택을 하고 만다.
"선배가 되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겨우 권위를 지키는 방법이라고는 입을 닫고 지갑을 여는 것밖에는 없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적응하는 것이 힘드니 점점 위축된다. 까마득한 후배들에게도 당당하지 못한 허울뿐인 선배가 되고 만다.
어쩌다가 무시라도 당하는 것 같으며 버럭 큰소리부터 내는..... 어쩌면 그런 모습이 더 비굴한 선배의 모습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저를 비롯한 많은 꼰대들은 노력해야겠습니다. 스스로를 늘 새롭게 다져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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