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목표를 위해 가져야 할 비전, 버려야 할 두려움
“피크 앤드 밸리 (Peaks and Valleys)” Dr. Spencer Johnson 저, 김유신 옮김
더 나은 미래를 그저 따르기만 하는 것과 명확한 비전을 따르는 것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 차이점은 바로 행동이었다.
“그래 그거였어! 바라기만 한다고 저절로 행동으로 옮겨지진 않지, 하지만 명확한 비전을 진정으로 따르면 바라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행동에 옮기고 목표가 이루어지게 하고 싶어 지는 법. 나 자신에게 억지로 강요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해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그것을 원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나는 늘 목표를 정하지만 그 목표를 성취한 것은 절반이 되지도 않는다. 절반도 많은 성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세웠던 목표가 그다지 원대한 꿈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절반이 나로서는 괜찮은 성적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작 그 수준에서도 절반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면 나는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
높은 산봉우리를 오르기 위해서는 그에 못지않은 험난한 계곡을 지나야 한다는 것이 바로 등가교환(等價交換)의 법칙이다. 우리가 얼마나 높은 목표를 정했는지에 따라서 참고 지불해야 하는 고난의 크기가 정해진다.
나의 경우, 산봉우리의 중턱에서 돌아섰던 많은 일들은 목적이 무엇이었냐 와는 상관없이, 마치 패배자의 공식처럼 대동소이했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봉우리의 모습은 근사하기만 하고, 나는 그곳에 반드시 올라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곳을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험준한 계곡은 충분히 만만해 보인다.
우리는 점차 산봉우리를 향하면서, 만만했던 계곡이 생각보다 위태롭고 어려운 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초반에는, 이 정도 고난은 당연히 감수할만한 대가라고 생각하며 인내하지만, 계곡의 중간쯤에서는 가히 마법의 숲이라고 표현할 만큼 이상한 구간이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면서는, 마치 산봉우리의 환상을 보았던 것처럼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 근사하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불했던 대가보다 앞으로 산봉우리까지 더 가면서 지불해야 할 아직 치르지 않은 대가가 더욱 큰 것 같아 더 이상의 지불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이어서, 산봉우리 별것도 아닌데, 지금이라도 돌아간다면 앞으로의 지불은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법의 구간에서 낮아진 산봉우리의 가치와 더 지불해야 할 대가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이 증상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마법에 걸린 것이다. 처음에 생각했던 가치들이 서로 낮아지고, 높아지면서 목표에 혼란이 생긴다.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포기를 합리화를 하는 중이다.
불투명한 미래의 목표보다는 현재의 만족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이미 중도 포기의 단계에 진입한 것이다.
목표를 향해 갈 때, 가장 무서운 적은 나 자신이며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이 만들어 낸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허상의 장애물일 뿐이다.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우리의 두려움 속에서 더 증폭된다. 결국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와 좌절을 상상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단 한 가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1993 대통령 취임식 연설문 중)
실재적인 위험보다 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좌절과 위태로움을 불러올 수 있다.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일도 두려움 때문에 위축되고 실수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큰일을 계획하고 있다면 두려움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내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허상의 장애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겠다.
목표에 대한 선명한 비전은 두려움을 억제하며 마법을 구간을 무사하게 지나쳐 갈 수 있는 보호부적 같은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십중팔구의 도전에서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선명한 비전을 갖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도전하지 않는 것뿐이다.
비전은 막연한 동경이 아니다. 그 정도의 수준은 등산로 초입에서 산적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나게 될 수준의 마음가짐에 불과하다.
비전은 산봉우리에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뿐만 아니라 그곳에서만 호흡할 수 있는 신선한 공기와 꽃향기, 그리고 산새 소리와 아름다운 풍경들을 마치 현실처럼 느껴진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뚜렷한 확신이다.
이런 확신은 모진 역경을 무릅쓰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것은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둠 속에서도 곧 해가 떠올 거라는 것을 알게 만들고 견디게 만들고 걷게 만든다. 고단한 걸음걸이에서도 한 발짝마다 목표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은 다시 피어오르는 두려움을 무색하게 할 만한 강력한 추진력이 될 것이다.
비전을 재정비하자.
사소한 것이라도 성취의 경험이 있다면 당시의 만족감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 목표의 험준한 계곡을 지날 때 그 달달했던 기억을 뚜렷하게 떠올려야겠다.. 그랬을 때 나는 경험이 주는 지혜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지. 매번 똑같은 어려움 속에서 똑 같이 힘들지는 않길 바란다.
어떤 목표가 있다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마법의 숲을 대비해서 비전을 정비하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목표를 정했을 때에는 실패하기 쉽다.
우리가 목표로 정할 때는 실현 가능성과 치러야 할 대가를 고려해야 한다. 목표를 정한다는 것은 단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현실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끝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시간과 노력은 헛되게 소비한 것에 불과하므로 목표를 설정하는 것부터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나는 현재 그 목표에 도달할 할 자격이나 능력이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며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 수준에 합당한 노력을 나는 지치지 않고 지불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 만일 그것에 미치지 않는다면 실현을 위한 목표가 아니라 단지 꿈으로 남겨 두는 편이 좋다.
포기할 수 없다면 그 목표의 결과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을 비전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것이 없다면 장거리 레이스에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만일 스스로로 목표의 결과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비전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당장 그것을 하고 싶어서 견디기 어려울 때까지 계속해서 비전을 떠 올리며 이미지를 아름답고 푸르게 가꾸어 가야겠다. 비로소 그 상태가 되면 나는 실행에 착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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