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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늦은 반성문

용서하는 마음, 나 자신을 위한 용서

by 관찰인간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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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용서하는 마음, 나를 위한 용서.

“폰더 씨의 실천하는 하루” 앤디 앤드루스(Andy Andrews) 저, 하윤숙 옮김.

아주 오랫동안 나의 용서하는 힘은 잊혀지고, 내 눈에서 사라져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소중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또 그들이 용서를 청하지 않았으므로 용서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리하여 내가 마음속에 억압해 두었던 용서는 비틀린 씨앗이 되어 검은 열매를 맺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순간 나의 인생은 새로운 희망과 확신으로 차고 넘친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는 이제 분노와 적개심을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제 용서는 아무 대가 없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냥 용서해 주는 이 간단한 행위 하나로 나를 버거워했던 과거의 악마들을 모두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나 자신 속에 새로운 마음, 새로운 시작을 창조한다.
나는 매일 용서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겠다. 나는 나의 용서를 빌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용서하겠다. 과거에 생각 없고,, 배려 없는 사람들이 내 앞 길에 무심코 내던진 말이나 행동에 분노로 펄펄 끓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나는 복수와 대결을 꿈꾸며 귀중한 시간들을 낭비했다. 이제 나는 내 구두 속에 아주 무겁게 들어 있는 이 심리적 돌덩어리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품고 있는 분노는 종종 일방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사람은 자신의 소행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폰더 씨의 실천하는 하루” 앤디 앤드루스(Andy Andrews) 저, 하윤숙 옮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겠다.


우리의 자아(에고)는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원한과 분노를 가지고 있을 때 경계와 방어의 안정감이 들고 그 상대에게 욕설을 똑같이 퍼부을 때 심리적 보상을 느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용서하자.

특히, 모든 사람을 용서해도 그 새끼만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새끼를 용서하자.

살면서 남들을 용서하지 못한 무거운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혼자서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어떤 일이 있었을 때, 그것은 나에게 생각할 수 없는 부당함이었고 억울함이었다. 근거 없는 부당한 대우였고 험담이며 이간질이었다. 심지어 그런 일로 인해서 나의 인생 항로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게 한 사람을 향해 저주를 내리고 싶은 미움이 들었다.

그 일이 일어 난 직후에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분노했다. 당시의 감정으로는 유혈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아낸 나 자신이 대견하다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의 분노였다. 감정의 격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약해지긴 했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머릿속에서 남아 있다. 그리고 일상 중에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혼잣말이라도 욕설을 지껄여야 했을 만큼 심각한 불쾌감을 느꼈다. 한밤중에 떠오른 생각에 나는 다시 잠에 들 수 없었다. 나는 당시의 분한 감정을 풀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괴로워하며 낭비하였는가. 그런 스스로의 감정해소 노력조차도 상대에 대한 미움을 증폭시켰고 나의 감정소비는 점점 커져갔다.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것은 마음속에 생긴 암 덩어리 같은 뒤틀린 검은 열매다. 그러나 이 검은 열매는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언제든 제거할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옛말에 ‘도끼는 잊어도 도끼를 맞은 나무는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 받은 사람은 마음에 박힌 커다란 옹이처럼 버거운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상처를 준 사람은 그 일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내가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이 태연하고 심지어는 아무런 기억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단순히 속담일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자주 경험할 수 있는 보통 인간의 행동 패턴이다.


나의 분노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나로 인해 상처 받았을 사람들도 떠오른다. 그 사람들도 역시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나를 향해 저주를 쏟아내고 있을 것이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반성이 든다. 더 이상의 글을 진행하기 전에, 우선 그분들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사과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날 상대방이 날 찾아와 용서를 구한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그를 용서한다면 나의 삶은 회복될 수 있는가? 지난 고통은 보상받을 수 있는가?

설사 내가 내린 저주로 상대방이 회복할 수 없는 난처한 일을 당한다면, 나의 마음은 풀릴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지난 과거의 상처를 지우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과거의 활기 찬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복수심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당장은 통쾌하고 고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결코 나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를 용서하는 것뿐이다. 용서는 새살로 옹이를 덮는 자구의 행동이며,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한 감정의 수습이다. 용서는 나의 분노를 잠재우는 것이다.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잘못한 사람이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한다든가, 상대방이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태도 또는 존재와도 무관하다. 우리의 용서를 상대방에게 알릴 필요도 없다. 용서는 오직 나 자신의 마음가짐이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우리의 용서는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이 더 이상 불행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용서를 통해 비로소 분노를 해소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용서는 화해와는 다른 말이다. 용서하는 것은 상대방과 원만한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둑질을 용서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과 함께는 어떠한 사업도 할 수는 없는 것처럼, 결국 용서하더라도 나머지 여정을 나와 함께 갈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



한번 일어난 일은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또다시 도둑질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경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번의 상처는 남을 탓할 수 있지만 똑같은 사람에게 다시 상처를 받는다면 그것은 그 경계를 소홀히 한 자신의 탓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용서하되 다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 신중할 일이다.

나 자신을 용서하겠다.

나는 매일 용서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겠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겠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나의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저지른 모든 실수, 모든 착오, 모든 좌절은 내 마음속에서 거듭거듭 반추되었다. 지키지 못한 약속, 낭비된 시간, 도달하지 못한 목표는 내 인생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부채질해 왔다. 나의 당황하는 태도는 나의 온몸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내가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발생하면 나는 무감각으로 반응했고 그리하여 더욱더 실망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오늘 나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적과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나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고거의 그림자가 빚어내는 의심, 공포, 좌절을 말끔히 씻어낸다. 오늘부터 나의 과거가 나의 운명을 통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했다. 나의 인생은 방금 새롭게 시작했다.
나는 나를 부당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용서하겠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겠다.

나는 매일 용서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맞이하겠다.

나는 나 자신도 용서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이 현재를 괴롭히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잘못한 후회, 죄책감을 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암덩어리처럼 품고 웅크리게 만든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해 다시 밖으로, 그리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은 과거의 잘못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누구나 매 순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살아 있다면 과거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과거의 잘못을 품고 웅크리고 있다면 그것을 만회할 기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라기 보다는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다. 법정스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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